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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5-06 12:34
당근마켓 매너온도 91.8도 어르신  
 글쓴이 : 알밤Tm
조회 : 13,186  
당근마켓을 한 번쯤 써본 분들이라면 쉽게 아실 수 있겠지만, 당근마켓에는 '매너온도'라는 게 있다. 매너온도는 당근마켓 사용자로부터 받은 칭찬, 후기, 비매너평가, 운영자 징계 등을 종합해 만든 매너 지표이다(인용: 당근마켓) 거래를 통해서 좋은 후기들이 쌓일수록 이 매너온도는 높아진다. 그래서인지 매너온도는 곧 중고거래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뢰도'로 직결된다.



 매너온도는 당근마켓 앱에서만 볼 수 있는 기능 중 가장 최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당근마켓 특성상 예기치 못한 빌런이자 진상을 만나볼 수 있으므로 나 역시도 정신 건강을 위해 가급적이면 매너온도가 높은 사람과 거래를 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저도 매너온도 45도지만요
 첫 자취를 시작했을 때 돈을 아낄 생각으로 시간 날 때마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소품이나 가구들을 살펴봤었다. 그러다가 집 근처에서 판매 중인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면 바로 채팅으로 연락을 드려 물건을 구매했었는데, 판매자에게 예의 있게 행동한 덕에 좋은 리뷰를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계속 쓰다가 어느 순간 필요가 없어질 때쯤이면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물건을 무료 나눔으로 올리곤 했는데 그 덕분에 매너온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당근마켓에서 매너온도 45도라는 평균 이상의 따뜻한 온도를 얻게 되었다. 때문에 이후에 거래를 할 때마다 적어도 어느 정도 수요가 있는 물건이라면 거래가 불발되거나 판매되지 않아 애먹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매너온도 45도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새도 없이 당근마켓에서 나보다 훨씬 높은 고온의 매너온도를 가지신 분들과 중고 거래를 통해 만나 뵐 수 있었다. 확실히 매너온도가 높으 분들일수록 친절하고 경우에 맞게 행동하시기 때문에 중고거래로 인해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많은 당근마켓 중고거래 짤처럼 기분이 상하는 일은 없었다.


출처: 당근마켓 프로필 화면 캡처 이미지
어느 날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렸다
 이사를 하면서 본가에서 쓰던 이케아 옷걸이바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좋은 주인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 당근마켓에 3천 원에 내놓았다.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아서 내놓은 지 약 3일 정도 지났을 무렵 한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그마치 매너온도 91.8도인 당근마켓 헤비 유져였다.



 당시 매너온도 91.8도인 분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그분이 천 원을 깎아 2천 원으로 가격 제안을 했음에도 바로 연락드려 거래를 진행했다. 어차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기도 하고, 버리기엔 아까웠기 때문에 가격은 크게 상관없었다.


출처: 판매 당시 올렸던 사진(이케아 옷걸이바)
당근마켓 매너온도 91.8도의 어르신과의 거래
 그렇게 이 분과 거래를 위해 채팅을 주고받을 때만 해도 짧게 대화를 나눠 나이대도 성별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매너온도가 90도가 넘을 수 있을까' 궁금증이 생겨 이분의 프로필을 조회해봤는데 자그마치 거래 후기만 145개에 재거래 희망률 100%를 자랑하는 분이셨다.



 어떻게 거래를 하셨길래 매너온도가 높은 건지 궁금해서 후기들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이분이 예상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좋은 물건을 판매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어르신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치 손자, 손녀의 마음이 담은 후기였다. 후기들 중 눈길이 가는 내용이 몇몇 있었는데, 물건을 구매하시면서 선물까지 주고 가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였다. '중고거래에서 웬 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어르신과 만나 뵙는 그 자리에서 궁금증이 바로 해소되었다.




출처: 당근마켓에서 매너온도 91.8도인 어르신과의 채팅 화면 캡처
물건을 팔았을 뿐인데, 선물까지 받았다
 어르신인 줄 모르고 천 원 깎아 드렸으면 집 앞까지 와달라고 말씀드려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집 앞에서 만나 뵙기로 했는데 그날따라 생각보다 더웠다. 어르신께 민폐는 아니었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중고거래를 위해 아파트 1층 현관으로 어르신을 뵈러 갔는데, 대략 70대 정도 되시는 한 할아버님이 계셨다.



 운전하고 오시느라 약간 늦었다고 미안해하시면서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팔아줘서 고맙다고 어르신이 약간의 고개를 숙이며 존댓말로 감사 인사를 하시는데 그 순간 이 분의 매너온도가 단지 나이 든 분이라 상대방으로부터 예의상 받게 된 점수가 아님을 깨달았다. 물건을 살펴보시지 않길래 여쭤보니, "판매자님께서 어련히 좋은 물건 파실 텐데, 뭘요 괜찮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흰 봉투와 두 개의 풋파일(발 뒤꿈치 각질제거기)을 내게 건네셨다.



 "깎아줘서 고마운 마음에 선물을 준비해봤어요. 두 개 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건대 혹시 필요하시면 가져가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얼떨결에 감사드린다고 인사하며 두 물건과 흰 봉투를 주머니에 넣은 채 어르신께 잘 쓰시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선 주차장까지 배웅해 드렸다.



 집에 돌아와 흰 봉투를 꺼내서 보니 새 지폐처럼 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천 원권 2장이 들어있었다. 어르신이 주신 풋 파일 2개도 모두 사용한 흔적이 없는 진짜 새 제품이었다. 분명 물건을 팔러 나갔을 뿐인데, 선물까지 받은 날이었다.


출처: 어르신에게 받았던 종합 선물세트
이만 마치며: 인생에서 나의 매너온도는 몇일까
 그 뒤로 어르신이 주신 풋 파일은 어머니께 하나 드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요긴하게 쓰고 있다. 이후에도 당근마켓에서 종종 거래를 했지만, 이때처럼 마음이 따뜻했던 거래는 다시 또 경험할 수 없었다. 가끔 어르신은 건강하신지 궁금해 프로필을 검색해보곤 하는데 여전히 부지런히 물건을 팔고 계시고 또 거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계신 듯하다. 예전보다 더 긍정적이고 장문의 후기가 올라오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아마도 곧 어르신의 매너온도가 100도에 도달하지 않을까.



 어르신은 아마도 당근마켓에서의 매너온도뿐 아니라 인생에서의 매너온도도 높을 것 같다. 나이 어린 상대방에게도 예의를 갖추시는 모습에, 또 작지만 선물까지 건네시는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근마켓 온도가 45도라고 나름 자부심을 느꼈던 내게 어르신과의 중고거래 경험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과연 당근마켓이 아닌 현실에서 내 매너온도는 몇 도쯤 될까.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은지, 또 예의 없게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마음에 이제라도 깨달음을 얻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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